‘신입으로 다시 써서 내세요’…그 말이 DS 사무실에 돌고 있다
· 사내 잡포스팅도 지난해 상반기부터 전면 중단 — 외·내부 이동 동시 봉쇄
· 특별경영성과급 신설로 사업부 간 보상 격차 더 벌어져 불만 가중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반도체 설계 직군의 경쟁사 이직이 법원 가처분 결정으로 사실상 봉쇄됐다. 성과급 격차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 비메모리 사업부 직원들은 이제 외부 이직도, 사내 부서 이동도 막힌 이중 차단 구조에 직면해 있다.
수원지법 민사31부, 전직금지 가처분 일부 인용
발단은 지난달 수원지법 민사31부(부장판사 신우정)의 결정이다. 법원은 삼성전자가 전직 직원들을 상대로 낸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대상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서 10년 이상 낸드플래시 핵심 설계를 담당하다 지난해 10월 퇴사한 뒤 올해 2월 SK하이닉스로 이직한 인력들이다.
결정의 핵심은 기간이다. 이들은 퇴직 후 1년 6개월이 되는 2027년 4월 30일까지 SK하이닉스와 그 계열사에 취업하거나 노무를 제공해선 안 된다. 전부 인용이 아닌 일부 인용이지만, 이직한 당사자들에게는 사실상 업무 중단 명령에 가까운 결과다. 신청 전부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법원이 전직금지 범위를 일정 부분 제한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당사자들이 체감하는 제약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
법원이 인용 근거로 삼은 두 가지 판단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한 데는 두 가지 판단이 작동했다. 첫째, 낸드플래시 설계가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 핵심기술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국가 핵심기술은 국외 유출 시 국가 안보와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기술을 의미하며, 반도체 분야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메모리 설계·공정 기술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둘째는 삼성전자가 해당 인력들을 핵심 인력으로 별도 관리해왔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점이다. 단순한 고용계약상 비밀유지 조항에 그치지 않고, 국가 핵심기술 보호라는 공법적 논거가 겹쳐 적용된 판단이어서, 법조계에서는 향후 유사 소송에서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핵심 인력 별도 관리’ 여부가 앞으로 전직금지 소송의 쟁점으로 더 자주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장에서 도는 소문 — ‘신입으로 다시 써서 내세요’
판결 이후 삼성전자 DS부문 설계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소문이 돌고 있다. “경력직으로 SK하이닉스에 지원했다가 ‘정 오고 싶으시면 신입으로 다시 써서 내세요’라는 답변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아시아경제는 해당 소문을 유언비어에 가깝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차라리 경력을 포기하고 신입으로라도 가고 싶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문의 사실 여부와 별개로, 이 말이 사무실 안에서 퍼진다는 것 자체가 이직길이 막힌 설계 직군의 심리적 압박을 드러낸다. DS부문의 한 직원은 아시아경제에 “설계 직군이 아닌 일부는 이직에 성공하기도 했다”며 “설계 인력의 경우 이직이 막히다 보니 불만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같은 DS부문 안에서도 엇갈리는 이직 결과
이번 가처분이 낸드플래시 핵심 설계 직군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같은 DS부문 안에서도 이직 결과가 갈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설계 직군이 아닌 직원 중에는 이미 이직에 성공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법원이 전직금지 인용 여부를 결정할 때 국가 핵심기술 관련성과 핵심 인력 해당 여부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직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구조다.
| 구분 | 낸드플래시 핵심 설계 직군 | 비설계·기타 직군 |
|---|---|---|
| 외부 이직(SK하이닉스) | 전직금지 가처분 — 2027년 4월까지 제한 | 일부 이직 성공 사례 있음 |
| 사내 잡포스팅(비메모리→메모리) | 지난해 상반기부터 전면 중단 | 지난해 상반기부터 전면 중단 |
| 법원 가처분 적용 | 해당 | 미해당(현재) |
| 이직 제한 해소 시점 | 2027년 4월 30일(가처분 만료) | 잡포스팅 재개 여부에 달려 |
사내 잡포스팅도 지난해 상반기부터 전면 중단
외부 이직이 막힌 상황에서 사내 이동마저 기약이 없다. DS부문 내 시스템LSI·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부에서 메모리 사업부로 이동하는 잡포스팅(사내 공모를 통한 직무전환 제도)은 지난해 상반기 이후 전면 중단된 상태다.
당시 중단 배경은 성과급 차이였다. 초과이익성과급(OPI)이 아닌 반기 성과급 목표달성장려금(TAI)의 차이만으로도 비메모리 인력이 메모리 부문으로 대거 이동하려는 현상이 나타났다. 회사 측이 비메모리 사업 운영에 필요한 핵심 인력의 대규모 이탈을 막기 위해 잡포스팅 제도를 사실상 동결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별경영성과급 신설, 사업부 간 보상 격차 더 벌어져
문제는 이후에도 격차가 더 확대됐다는 데 있다. 최근 신설된 특별경영성과급 등으로 메모리와 비메모리 사업부 간 보상 격차가 지난해보다 한층 더 벌어졌다. 메모리 부문으로의 이동 유인이 커진 만큼, 잡포스팅을 재개하면 비메모리 핵심 인력이 대규모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가 제도 동결 상태를 지속시키고 있다.
비메모리 사업부 직원들 입장에서는 보상은 격차가 나고, 이동할 수 있는 길은 안팎으로 막혀 있는 셈이다. 비슷한 구조의 인력 유출 압력은 다른 조직에서도 관찰된다. 금융감독원에서도 8년 새 의원면직이 3.5배 급증하며 실무 인력 77명이 이탈하는 등, 보상 격차를 배경으로 한 핵심 인력 유출 현상은 반도체 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중 차단 속 전망 — 잡포스팅 재개 여부가 관건
전직금지 가처분의 효력은 2027년 4월 30일까지다. 설계 직군이 법적 제약 없이 이직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시점은 그때다. 그러나 그 이전에 사내 잡포스팅 재개 여부가 직원 사기와 인재 유지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보상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 한, 잡포스팅을 재개하면 비메모리 핵심 인력이 대거 이동하려는 수요가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핵심 설계 인력을 둘러싼 기업 간 인재 경쟁의 법적 지형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본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도 삼성전자 출신 핵심 설계 인력 유치 전략에 제약이 생긴 상황이다. 최근 SK하이닉스를 둘러싼 시장 불확실성과 맞물려, 양사 간 인재 경쟁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업부 간 보상 구조 조정과 잡포스팅 운영 방침이 삼성전자 DS부문 내부 인사 전략의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
출처: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