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직장에서 77명이 사표를 던진 이유
· 입사 5년 미만 퇴직자, 2020년 1명에서 2024년 20명으로 폭증
· 재취업 1위 행선지는 대형 법무법인, 김앤장 22건으로 최다
금융감독원(금감원)에서 스스로 사표를 내는 이른바 ‘의원면직’ 퇴직자 수가 2017년 22명에서 2025년 77명으로 8년 만에 3.5배 급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일보가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단독 확보한 금감원 퇴직자 현황 자료에서 나온 수치다. 전체 퇴직률도 같은 기간 1.8%에서 5%대로 뛰었다. 검사·감독의 최일선을 담당해온 실무 인력의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수천 개 금융회사를 관리하는 조직의 역량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퇴직률 1.8%에서 5%대로…의원면직 비중도 65%→69%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의 의원면직자는 2017년 이후 매년 증가 추세를 유지했다. 정년퇴직이나 징계 해고가 아닌, 본인 의사로 회사를 떠나는 인원이 전체 퇴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65%에서 2025년 69%로 늘었다. 자발적으로 조직을 나가는 비율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금감원은 오랜 기간 금융시장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관이자, 고용 안정성이 보장된 직장으로 꼽혀왔다. 경쟁이 치열한 채용 관문 때문에 업계에서는 ‘신의 직장’이라는 표현이 붙을 정도였다. 그 금감원에서 자발적 이탈이 이 정도 속도로 늘고 있다는 점이 이번 자료의 핵심이다.
| 구분 | 2017년 | 2020년 | 2024년 | 2025년 |
|---|---|---|---|---|
| 의원면직 수 | 22명 | — | — | 77명 |
| 전체 퇴직률 | 1.8% | — | — | 5%대 |
| 근속 20년 미만 퇴직자 | — | 17명 | 46명 | 40명 |
| 입사 5년 미만 퇴직자 | — | 1명 | 20명 | 16명 |
이탈이 집중된 곳: 입사 5년 미만 실무직
퇴직자 분포에서 가장 큰 변화는 근속 기간이 짧은 직원들의 이탈이다. 근속 20년 미만 퇴직자는 2020년 17명에서 2024년 46명, 2025년 40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이 중에서도 입사 5년이 채 되지 않은 퇴직자는 같은 기간 1명에서 20명으로 급증했고, 2025년에도 16명에 달했다.
검사·감독 실무 역량은 단기간에 형성되지 않는다. 금융 관련 법령 해석, 검사 기법, 회사별 업무 특성 파악 등은 현장 경험이 누적되어야 갖출 수 있는 전문성이다. 입사 초기 인력이 빠르게 이탈한다는 것은, 조직이 전문인력 풀을 꾸준히 얇게 만들고 있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실무를 막 익히기 시작한 단계에서 나가는 인원의 증가는 숫자 이상의 함의를 갖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퇴직자들이 직접 밝힌 이유: 높은 업무 강도, 낮은 처우
최근 금감원을 떠난 30대 A씨는 국민일보에 “수천 곳에 달하는 금융회사를 감독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지만, 금융권과 비교하면 처우는 낮고 업무 강도는 높다”고 말했다. A씨는 “처우가 개선되지 않으면 검사·감독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자칫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부실이나 불완전판매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퇴직자 30대 B씨도 금융 현안 증가와 업무 범위 확대에 따른 야근 일상화를 이탈 배경으로 꼽았다. 최근 몇 년 사이 금감원이 다루어야 하는 금융 현안과 감독 대상 범위가 늘어났지만, 그에 상응하는 처우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인식이 퇴직자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다.
행선지 1위: 대형 법무법인…김앤장 22건으로 최다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거친 금감원 출신 재취업 317건(2016~2025년)을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은 인원이 이동한 곳은 대형 법무법인이었다. 63건으로 전체의 약 20%를 차지했다. 개별 사무소 기준으로는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22건으로 가장 많았고, 광장·율촌·세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 대형 로펌은 금융회사를 자문하거나 금융당국의 조사·제재에 법적으로 대응하는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 금감원에서 검사·감독 업무를 직접 수행하던 인력이 피감독 금융회사를 자문하고 방어하는 법률 서비스 쪽으로 이동하는 구조다. 취업이 제한되거나 불승인된 사례는 25건으로 전체의 7.9%였다.
가상자산업계 이직, 2021년 이후 뚜렷
로펌 다음으로 눈에 띄는 행선지는 가상자산업계다. 두나무가 9건, 빗썸이 7건으로 확인됐다. 이 흐름은 2021년 이후 두드러졌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금융 규제와 준법 경험을 갖춘 인력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시기와 겹친다.
금융감독 경험이 있는 인력이 민간 신산업 영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은, 기존 금융권뿐 아니라 새로운 시장 참여자들도 규제 대응 인력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려는 흐름을 반영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산·정원 승인권은 금융위원회가 쥐고 있다
퇴직자 B씨는 인력 유출의 구조적 배경으로 금융위원회의 예산 결정 구조를 지목했다. “예산과 정원에 대한 승인 권한을 가진 금융위원회가 인건비를 사실상 묶어둔 상태에서 금감원에 더 높은 역량만 요구해선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금감원은 금융위원회 산하 기관으로, 인건비를 포함한 핵심 운영 조건을 금감원 자체 결정만으로 변경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 있다. 처우 개선의 필요성이 내부에서 인식되더라도 독자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제약이 인력 유출의 배경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신규 채용 2.6배 확대…허리급 대체는 또 다른 과제
금감원은 신규 채용 규모를 대폭 늘리는 방식으로 인력 공백에 대응하고 있다. 2023년 214명, 2024년 213명의 정규직을 채용했다. 2018~2022년 평균 채용 인원인 약 82명과 비교하면 2.6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퇴직자 B씨는 이 방식의 한계를 지적했다. “‘허리급’ 실무 직원은 육성에 오랜 시간이 걸려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험과 전문성이 쌓인 중견 실무 인력이 빠져나가고 신입 직원이 그 자리를 채우는 구조가 반복될 경우, 조직 전체의 감독 역량이 실질적으로 얇아질 수 있다는 우려다. 채용 확대가 단기 공백 해소에는 기여하더라도, 전문성 축적이라는 측면에서는 별도의 해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재섭 의원 “전문인력 유출 방지 대책 조속히 마련해야”
이번 자료를 공개한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금융감독의 핵심인 실무 인력이 빠져나가고 신입으로 빈자리를 메우는 구조가 반복되면 감독 역량 약화는 불가피하다”며 “전문인력 유출 방지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증권·은행·보험·핀테크 등 업권을 망라한 수천 개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검사와 감독을 수행하는 국내 금융규제의 핵심 기관이다. 실무 인력의 이탈이 이 기능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지, 그리고 처우 개선을 위한 구조적 해법이 마련될 수 있는지가 향후 쟁점으로 남아 있다.
출처: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