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역대 최고 기온 41.7도…에어컨 보급률 6%가 만든 정치 논쟁

선풍기 vs 에어컨, 독일에서 정치 싸움이 됐다

· 독일 41.7도, 기상 관측 이래 최고 기온이 이틀 만에 재경신
· 에어컨 보급률 6%…건축 규제와 환경 의식이 낳은 냉방 공백
· AfD·녹색당 충돌…유럽 전역 냉방 정책이 정치 쟁점으로

지난 6월 29일 독일 동부 브란덴부르크주 나이세뮌데에서 41.7도가 관측됐다. 독일기상청(DWD)이 기록을 집계한 이래 가장 높은 기온으로, 이틀 전 작센안할트주 뫼케른드레비츠에서 나온 41.5도 기록을 스스로 갈아치운 것이다. 에어컨 가정 보급률이 6%에 불과한 나라에서, 폭염은 이제 생활 문제를 넘어 정치 쟁점으로 번졌다.

기상 관측 이래 최고 기온, 이틀 만에 재경신

6월 27일 작센안할트주 뫼케른드레비츠에서 41.5도가 찍히며 독일 기상 사상 최고 기온이 갱신됐다. 그런데 불과 48시간 만에 브란덴부르크주 나이세뮌데에서 41.7도가 관측되며 그 기록이 다시 무너졌다. DWD에 따르면 두 기록 모두 독일 기상 관측 역사상 전례가 없는 수치다.

올해 유럽의 폭염은 5월 하순부터 시작됐다. 평년보다 10~15도 높은 기온이 이어졌고 7월을 앞두고도 수그러들 기미가 없었다. 단일 국가의 일시적 고온 현상이 아니라 대륙 전체를 뒤덮은 광역 열파의 성격을 띤다.

베를린엔 물대포, 라이프치히엔 녹아내린 선로

수도 베를린도 39도까지 치솟았다. 경찰이 물대포 차량을 동원해 길거리 시민에게 물을 직접 뿌리는 장면이 연출됐다. 6월 28일에는 미국 가수 브루노 마스의 공연을 보러 모인 관람객들이 뜨거운 햇볕을 막기 위해 은박 천을 뒤집어쓰고 입장하는 모습이 AFP 카메라에 포착됐다.

라이프치히에서는 노면전차 선로가 열기에 변형되며 운행이 전면 중단됐다. 철로 변형은 도심 기온이 극한에 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독일 도시 인프라가 40도 안팎의 폭염을 설계 기준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유럽 6월 말 초과 사망 1만 명, 9,000명이 고령층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원하는 사망률 감시망 유로모모(EuroMOMO) 집계에 따르면 6월 말 유럽 전역의 초과 사망자는 1만 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9,000명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층이었다.

초과 사망이란 같은 시기의 예년 평균 사망자 수를 초과한 사망을 뜻한다. 폭염 자체가 직접 사인으로 집계되지 않아도, 열 스트레스로 인한 심뇌혈관 질환 악화 등이 간접적으로 반영된다. 고령층에 피해가 집중되는 것은 체온 조절 능력의 저하와 냉방 설비 부재가 겹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노인 인구 비중이 높은 유럽에서 폭염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사망률에 직결되는 공중보건 위기다.

가정 에어컨 보급률 6%…선풍기와 차광막이 독일의 여름

더위를 이렇게까지 버텨야 했던 근본 이유는 냉방 설비의 부재다. 독일 가정의 고정식 에어컨 보급률은 약 6%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집계로 지난해 유럽 평균 보급률(23%)의 4분의 1 수준이다. 같은 집계에서 일본은 93%, 미국은 90%, 중국은 79%를 기록했다.

국가·지역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
일본 93%
미국 90%
중국 79%
유럽 평균 23%
독일 약 6%

독일 주택가에서 여름을 나는 방식은 오래전부터 차광막을 내리고 창문을 가리는 것이 기본이었다. 학교와 병원, 지하철에도 냉방이 충분치 않고, 일부 지하철은 창문을 열어 달리는 방식으로 운행한다. 이번 폭염은 그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숫자로 보여줬다.

건축 규제와 환경 의식, 두 겹의 장벽

보급률이 낮은 데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EU 주택의 약 40%가 1945년 이전에 지어졌으며, 이런 건물은 외관 보존 규제를 받는다. 실외기를 설치하는 행위 자체가 건축물 외관 변경으로 간주돼 행정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웃의 동의와 소음 문제까지 해결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허들이 많다.

여기에 환경 의식이 한 겹 더 얹혔다. 전력 소비 증가, 냉매 누출, 도시 열섬 효과를 이유로 냉방 확대에 신중한 기류가 수십 년간 지속됐다. 그 결과 자연 환기, 단열, 차양이 폭염 대응의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올여름 그 원칙이 무너졌다. 41.7도 앞에서 차광막은 무력했다.

이동형 에어컨 품귀…메이디 독일 매출 37%, 스페인·프랑스 108% 급증

허가와 실외기 설치가 필요 없는 이동형·창문형 제품으로 수요가 몰렸다. 중국 가전업체 메이디(Midea)의 에어컨 매출은 5월 기준 독일에서 1년 전보다 3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스페인과 프랑스향 출하량은 108% 급등했다.

메이디의 이동형 제품은 일부 유통 채널에서 재고가 소진됐고, 중고 거래 가격이 신제품 출고가를 웃도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일본 미쓰비시전기도 독일을 포함한 유럽 전반의 수요 급증에 대응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에어컨을 사치품으로 분류하던 시장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기후 히스테리가 사람 죽였다” 대 “나무가 최고의 에어컨”

폭염이 길어지면서 냉방 논쟁은 빠르게 정치 무대로 옮겨붙었다.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극우 정당 독일대안당(AfD)은 “기후 히스테리가 에어컨 설치를 가로막아 폭염 사망자를 늘렸다”고 주장하며 건축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반면 녹색 진영은 도심 녹지 확충과 재생에너지 확대가 먼저라고 맞섰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여름에 부채를 쓰면 녹색당, 에어컨을 쓰면 극우냐”는 풍자가 확산됐다. 냉방 기기 하나가 정치 성향의 리트머스지가 된 셈이다. 비슷한 구도는 유럽 전역에서 동시에 나타났다. 내년 4월 대선을 앞둔 프랑스에서는 극우 국민연합(RN) 소속 마린 르펜 의원이 학교와 병원에 에어컨을 대규모 설치하겠다고 공약했다. 벨기에에서는 좌파 성향 지방정부가 “최고의 에어컨은 나무”라며 도시 녹화를 앞세우자, 우파 진영이 “비과학적 환경주의”라고 반박했다.

냉방 격차,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불평등

공방이 커질수록 정작 폭염의 원인과 피해 격차는 뒤로 밀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BBC는 냉방 설비를 갖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실내 노동자와 야외 노동자 사이의 ‘냉방 격차’가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불평등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이 나뉜다는 얘기다.

세계보건기구 유럽사무소는 병원·요양시설·학교·대중교통 등 취약계층이 이용하는 시설에는 냉방을 적극 확대하되, 도시 녹지 확충과 건물 단열 개선 같은 장기 대책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독일 정치권은 냉방 설치 관련 건축 규제 완화 여부를 두고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노후 건물 비중이 높고 기후 정책과의 충돌, 전력망 부담이 얽혀 있어 단기 해법을 찾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상 관측 이래 최고 기온을 이틀 만에 갱신하는 폭염이 반복될 경우, 6%라는 보급률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출처: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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