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 스파이·위장 연구소, 대학 기술 유출 5년간 135건

데이터 지우고 귀국한 유학생, 대학은 속수무책이었다

· 2020~2026년 기술 해외 유출 135건 중 13건이 대학·연구소에서 발생
· 국외 유출 검거 2021년 9건→2025년 33건, 3배 이상 급증
· 신고 기피와 입증 한계로 암수 범죄 실제 더 많을 것으로 추정

대학 연구실이 산업기술 해외 유출의 새로운 통로로 부상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이 귀국하며 연구 데이터를 삭제하거나 클라우드로 반출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으며, 해외 기업이 산학 협력 공간을 거점으로 국가핵심기술을 빼돌린 사건도 드러났다. 국내 공학계열 외국인 석·박사 재학생 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대학의 연구보안 체계는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5년간 기술 해외 유출 135건, 대학·연구소 몫 13건

2일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6년 6월 말까지 산업기술 및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 사건은 총 135건 발생했다. 이 가운데 대학과 연구소에서 유출된 사례가 13건으로 전체의 9.6%를 차지했다.

나머지 122건은 주로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 등 제조업 기반 기업에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학과 연구소는 절대 건수로 보면 소수이지만, 기초연구 단계의 기술은 특허 등록이나 비밀 지정 전에 유출될 경우 사후 법적 구제가 어렵다는 점에서 피해의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이 있다. 연구 성과 자체가 공개 발표 이전까지 외부에서 인지되기 어렵다는 점도 유출 감지를 늦추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기준 국내 공학계열 외국인 석·박사 과정 재학생은 7,258명으로 2021년(6,149명) 대비 18% 증가했다. 연구 인력의 국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 연구실 차원의 보안 관리 역량 강화는 동반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데이터 지우고 귀국한 유학생 — 국립대가 뒤늦게 보안 의뢰

한 국립대는 최근 정보보안업체에 연구 데이터 삭제·훼손에 대비한 관리 시스템 구축을 의뢰했다. 이 대학 공학계열 소속이던 중동계 유학생이 갑자기 귀국하면서 연구실 컴퓨터에 저장된 연구 데이터를 삭제한 정황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이 학생이 연구 성과를 본국의 기업 등에 넘길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출 또는 삭제 시도가 먼저 발생하고, 보안 시스템 구축 의뢰가 뒤따른 구조다. 이미 삭제된 데이터의 완전한 복구 가능성이나 외부 반출 여부를 소급해 확인하는 데는 기술적 한계가 따른다. 이 사례는 국내 상당수 대학이 연구 데이터 접근·반출·삭제에 대한 사전 통제 장치를 갖추지 못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중국 군사대 출신, 항공우주 연구실 합류 5개월 만에 잠적

올해 초 국내 한 명문대 항공우주 분야 연구실에 중국인 유학생이 찾아와 인공지능(AI)을 항공우주 연구에 접목하는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밝혔다. 지도교수는 학생의 연구 역량과 의지를 보고 합류를 승인했다. 그러나 이 학생의 출신 대학은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직속 기관인 국방과학기술대였다.

주변에서는 국가정보원을 통한 신원 확인을 권유했으나 지도교수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이 유학생은 합류 5개월 만에 돌연 중국으로 귀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 지도교수는 “민감 과제를 맡긴 것은 아니지만, 연구 과정에서 습득한 기술이 어디에 활용될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군사 목적으로 운영되는 대학 출신 연구자가 민간 연구실에서 습득한 기술을 어떤 목적에 전용하는지 확인할 수단이 현재로선 없다. 유학생 선발을 사실상 지도교수 개인의 판단에만 맡기는 구조가 보안 취약점으로 지목된다.

기업이 직접 위장 연구소 설치 — 에스볼트·고려대 사건

개인 유학생 수준을 넘어선 조직적 수법도 드러났다. 중국 배터리업체 에스볼트는 2021년 고려대 산학관에 위장 연구소를 마련했다. 이 업체는 삼성SDI와 SK온의 전·현직 임직원을 포섭해 국가핵심기술을 빼내다가 적발됐으며, 지난해 검찰에 기소됐다.

산학 협력 공간은 외부 기관의 입주와 대학 내 네트워크 접근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에스볼트 사건은 이러한 개방적 구조가 역으로 기술 유출 거점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입주 기업·기관에 대한 사전 보안 심사 절차가 미비했다는 지적이 이 사건 이후 다시 제기되고 있다.

항목 수치
산업기술 해외 유출 총 건수 (2020~2026.6) 135건
대학·연구소 발생 건수 13건 (9.6%)
국외 유출 검거 건수 (2021년) 9건
국외 유출 검거 건수 (2025년) 33건
공학계 외국인 석박사 재학생 (2021년) 6,149명
공학계 외국인 석박사 재학생 (지난해) 7,258명

국외 유출 검거 3배 이상 급증, 2025년 역대 최대

경찰청에 따르면 2025년 산업기술 유출 사범 검거 건수는 국내 146건, 국외 33건 등 총 179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국외 유출 검거 건수는 2021년 9건에서 33건으로 약 3.7배 증가했다.

수사당국은 단속 역량 강화와 실제 유출 시도 증가가 함께 작용한 결과로 보고 있다. 다만 이 수치는 적발·검거에 성공한 건수에 한정된다. 보안업계와 수사당국 모두 실제 유출 건수는 공식 통계를 크게 웃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베트남 유학생 사건 — 1심 실형,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

전기차 충전기 기술 유출 사건은 처벌 수위를 둘러싼 논란을 보여주는 사례다. 서울의 한 대학 석사과정에서 전기차 충전 효율을 높이는 ‘양방향 탑재형 충전기’ 기술을 연구하던 베트남 국적 A씨는 2023년 클라우드에 저장된 연구 자료를 내려받아 귀국한 뒤 현지 기업에 활용하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2025년 12월 1심에서 징역 2년이 선고됐으나, 2026년 4월 항소심은 자료가 실제 제3자에게 제공되거나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진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했다. 보안업계 일각에서는 ‘반출 행위 자체’와 ‘실제 전달·활용’ 사이의 입증 요건 차이가 기술 유출 사건의 처벌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 유출 피해 대학은 평판 하락과 해외 공동 연구 불이익을 우려해 신고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수사당국은 드러나지 않은 암수 범죄가 공식 통계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본다.

신고 기피가 키우는 암수 범죄 — KAIST 라이다 사건이 남긴 여파

보안업계와 수사당국은 드러나지 않은 이른바 암수 범죄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 유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대학 평판이 하락하고, 해외 연구기관·기업의 보안 심사가 강화되어 공동 연구 기회에 불이익이 생기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빅테크 기업은 최근 KAIST에 공동 연구를 제안하면서 2017~2019년 이 대학에서 발생한 자율주행 센서 기술 유출, 이른바 ‘라이다(LiDAR) 사건’의 재발 방지 대책을 먼저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사건 하나가 수년 후까지 대외 협력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신고보다 내부 수습을 택하는 유인이 대학 입장에서는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셈이다.

전문가 “채용부터 퇴직까지 연구 전 주기 관리 체계 필요”

홍준호 성신여대 융합보안공학과 교수는 “외국인 연구원 퇴직 시 자료 회수 등 연구 전 주기에 걸친 관리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채용 단계의 신원 확인부터 재직 중 데이터 접근 이력 관리, 퇴직 또는 귀국 시 자료 반환 확인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연구자를 겨냥한 해외 기관의 접근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인재 영입 외에도 연구 인프라 지원이나 고액 연봉 제안이 정년을 앞둔 교수들에게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수사당국과 보안업계는 이 부분의 위협도 확대되는 추세로 보고 있다.

국내 공학계열 외국인 석·박사 재학생이 지난해 기준 7,258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연구 인력 다양화가 가져오는 이점과 보안 위험을 동시에 관리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정부 차원의 연구보안 가이드라인 강화와 대학별 자체 보안 역량 확충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출처: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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