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나는 수건이 ‘귀한 보물’이 된 연구실의 기묘한 1년
· 연구팀, 악취 샘플 직접 수집하며 평가 방법 새로 구축
· 출시 후 매출 316% 성장한 피지 모락셀라 개발의 전말
빨래를 해도 사라지지 않는 쉰내의 원인은 세탁 습관이 아니라 세균이다. LG생활건강 Fabric Care 연구팀은 빨래 쉰내의 주범으로 모락셀라(Moraxella)균을 특정하고, 이를 표적으로 삼는 세제를 개발했다. 원정희 LG생활건강 Fabric Care 연구팀장이 아시아경제 인터뷰에서 공개한 개발 과정은, 냄새나는 수건을 ‘귀한 시험편’으로 대접하는 낯선 풍경에서 시작됐다. 제품은 출시 이후 매출 316% 성장이라는 시장 반응을 기록했다.
모락셀라균, 빨래 쉰내의 특정된 주범
빨래 냄새를 유발하는 미생물로 모락셀라가 문헌에서 지목되고 있다는 사실은 연구팀이 출발점으로 삼은 정보였다. 그러나 이것이 실험실 조건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했다.
연구원들이 집에서 실제로 쓰던 수건을 직접 가져와 균총을 분석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수거한 수건 전부에서 모락셀라가 검출됐다. 일부 수건에서는 전체 미생물 가운데 모락셀라의 비중이 99% 이상을 차지했다. 실험실의 가설이 일상의 빨래에서 그대로 확인된 것이다.
모락셀라는 섬유에 잔존하는 피지 등 오염물질을 분해하면서 특유의 냄새 물질을 생성한다. 세탁이 이 균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면 옷을 다시 입거나 섬유가 습기에 노출될 때 냄새가 재현되는 구조다. ‘빨아도 냄새가 난다’는 불편의 메커니즘이 여기서 설명된다.
‘악취 샘플 구걸’…냄새나는 수건이 연구실의 보물이 된 사연
모락셀라를 표적으로 삼는 세제를 개발하려면 역설적으로 지독하게 냄새가 밴 섬유 샘플부터 확보해야 했다. 연구원들은 자신이 집에서 쓰던 수건과 베갯잇, 청바지를 직접 연구실로 가져왔고, 지인들에게도 “쉰내 나는 빨래가 있으면 잘 보관해 달라”고 부탁했다.
냄새가 강할수록 좋은 시험편이었다. 원 팀장은 “냄새를 없애는 제품을 개발하는데 정작 연구할 때는 냄새나는 수건을 찾아다니게 됐다”며 “어느 순간부터 연구실에서는 냄새나는 수건이 오히려 귀한 시험편, 거의 보물 같은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
샘플 확보는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도 이어졌다. 일부 연구원은 러닝 후 운동복을 세탁하지 않고 지퍼백에 보관했다가 다음 날 다시 착용하는 과정을 일주일간 반복했다. 직접 냄새나는 운동복을 ‘제조’한 것이다. 제품 개발 소식을 들은 유관부서 직원은 “허리벨트 우레탄 부분에 밴 냄새가 아무리 빨아도 빠지지 않는다”며 자신의 물건을 시험용으로 내놓기도 했다.
연구실을 덮은 4M3H — 천만분의 1이면 충분한 악취
모락셀라균이 생성하는 대표적인 냄새 물질은 4M3H(4-메틸-3-헥세노산)다. 이 물질의 특성은 극소량으로도 강한 냄새를 낸다는 점이다. 농도 0.1ppm, 즉 천만분의 1 수준이면 특유의 빨래 쉰내가 충분히 감지된다.
연구 과정에서 4M3H를 직접 취급해야 했다. 조금만 잘못 다뤄도 연구실 전체에 냄새가 퍼졌고, 심할 때는 같은 층의 연구원들이 자리를 피할 정도였다. 냄새가 옷에 밴 채 퇴근하면 지하철 안에서 주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비켜가는 일도 있었다고 원 팀장은 전했다.
이 경험은 빨래 쉰내가 개인의 세탁 환경에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운동복이나 오래된 수건에서 나는 냄새는 공용 공간에서도 타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연구팀이 이 물질의 특성을 몸으로 체감하며 개발을 진행했다는 사실은 제품 설계의 방향을 설명하는 맥락이 된다.
냄새 제거 성능 평가 — 얼룩보다 훨씬 까다로운 이유
샘플 확보만큼 어려웠던 것은 ‘냄새가 실제로 사라졌는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이었다. 원 팀장은 “얼룩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냄새는 세탁 조건이나 건조 조건,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모두 달라 제품 성능을 판단하기가 훨씬 까다로웠다”고 말했다.
세탁 직후에는 냄새가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착용하거나 섬유가 다시 젖었을 때 냄새가 되살아나는 경우가 있었다. 냄새 물질의 종류와 잔류량, 섬유 속 미생물의 구성비, 세탁 온도, 건조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다. 개인의 후각 민감도도 변수였다. 같은 섬유를 두고도 연구원마다 판단이 엇갈리는 상황이 반복됐다.
연구팀은 실제 생활 환경을 반복해서 재현하고 냄새 평가 방법 자체를 새롭게 구축했다. 원 팀장은 “실제 생활에서 발생하는 냄새를 다루는 제품인 만큼 다양한 조건에서 반복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 평가 항목 | 얼룩 제거 | 냄새 제거 |
|---|---|---|
| 성능 확인 방식 | 세탁 전후 육안 비교 | 후각 평가 + 기기 측정 병행 필요 |
| 결과에 영향을 주는 변수 | 상대적으로 단순 | 세탁·건조 조건, 미생물 구성, 개인 후각 민감도 |
| 세탁 후 재발 가능성 | 일반적으로 없음 | 착용·수분 노출 시 냄새 재발 가능 |
| 평가 방법 표준화 난이도 | 낮음 | 높음 — 연구팀이 별도로 새로 구축 |
개발의 출발점 — 고객을 다시 보는 것
기술 개발 이전에 연구팀이 집중한 것은 ‘누가, 왜 같은 불편을 반복해서 겪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연구팀이 주목한 소비자 집단은 1~2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였다. 가사노동에 시간을 충분히 쓰기 어려운 이들은 빨래를 삶거나 냄새 제거를 위해 별도의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 방식을 꺼렸다.
소비자 조사에서 이 집단이 가장 큰 세탁 고민 중 하나로 꼽은 것이 바로 ‘빨래 쉰내’였다. 원 팀장은 “기존에는 세제를 바라볼 때 세척력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고객이 왜 같은 불편을 반복해서 겪는지를 보는 데서 시작했다”며 “냄새를 없애기 위해 시간을 더 쓰는 것이 아니라 평소 세탁 과정 안에서 추가적인 수고 없이 해결하고 싶다는 니즈가 분명했다”고 설명했다.
이 접근은 세척력 경쟁이 지배하던 세탁세제 카테고리에서 다른 각도를 찾은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더 강한 세제’가 아니라 ‘특정 불편의 해소’라는 점을 확인하는 데서 제품의 방향이 결정됐다.
피지 모락셀라 출시와 316% 매출 성장
이 모든 과정 끝에 탄생한 제품이 LG생활건강의 ‘피지 모락셀라’다. 제품명에 원인균 이름을 직접 쓴 것은 이례적이다. 세탁세제 카테고리는 통상 ‘세척력’, ‘향기’, ‘부드러운 섬유’처럼 감각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모락셀라균을 제품명에 넣은 것은 소비자의 ‘불편 공감’을 직접 건드리겠다는 포지셔닝으로 읽힌다.
시장 반응은 수치로 나타났다. 출시 이후 매출이 316% 성장했다. 구체적인 기간이나 절대 매출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세탁세제 시장에서 이 수준의 증가율은 카테고리 내 신제품이 도달하기 쉬운 수치가 아니다.
이 사례는 세탁세제 시장의 경쟁 구도가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세척력 중심의 기술 경쟁에서, 일상의 특정 고통점을 겨냥한 문제 해결형 제품이 소비자의 선택을 이끌어내는 흐름이다. 1~2인 가구의 증가와 맞벌이 가구의 확산이 이 흐름을 뒷받침하는 구조적 배경으로 지목된다.
연구팀이 남긴 한마디 — “냄새나는 수건, 버리지 마세요”
원 팀장이 인터뷰에서 첫 번째로 꺼낸 말은 “혹시 집에 냄새나는 수건이 있으면 버리지 말고 가져다주세요”였다. 악취 샘플을 구하러 다니던 개발 시절의 농담 섞인 흔적이다.
빨래 쉰내는 오랫동안 세탁 습관의 문제로 여겨져 왔다. ‘세탁기를 너무 오래 두었다’, ‘건조를 빨리 하지 않았다’는 식의 설명이 일반적이었다. 이번 개발 과정은 그 프레임을 바꾼다. 원인은 습관이 아니라 모락셀라균이라는 구체적인 생물학적 실체에 있으며, 세제가 그 균을 직접 겨냥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이 냄새나는 수건을 ‘보물’처럼 대접하고, 악취 물질 4M3H를 온몸으로 감수하면서 개발을 진행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소비자가 ‘지긋지긋한 쉰내’라고 표현하는 불편의 실체를 먼저 확인하지 않으면, 그 불편을 해소하는 제품도 만들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출처: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