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를 들었다면 그런 말은 못 한다
· 구조 출동 절반은 이미 가라앉은 사람 건지는 출동
· 에세이 ‘당신이 더 귀하다’ 저자 백경 씨, 여름 안전 당부
계곡 출입 통제 ‘자유 침해’ 주장에 소방관이 답했다
지난 7월, 소셜미디어에 한 누리꾼의 글이 올라왔다. “계곡에 왔는데 행정안전부 지시로 출입이 통제됐다”며 “계곡에서 내가 알아서 물놀이하겠다는데 나라가 왜 막느냐”는 내용이었다. 규제에 반발하는 댓글이 빠르게 달렸다. 이 글을 공유하며 반박에 나선 이가 있었다. 10년차 소방관이자 에세이 ‘당신이 더 귀하다’ 저자 백경(필명·40대) 씨였다.
백 씨는 해당 글에 대해 “헛소리”라고 직접 표현했다. 그는 “한 번이라도 그 목소리를 들은 적 있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말한 ‘목소리’는 계곡 구조 현장에서 밤새 메아리치는 가족의 절규다. “‘아빠, 아빠’, ‘여보, 여보’, ‘형, 형'”이라고 이름을 부르는 소리. 물에서 떠오르지 않는 사람을 부르며 물가에 서 있는 가족들의 목소리다.
이 글은 빠르게 확산되며 광범위한 공감대를 이끌었다. 통제의 근거를 법령이나 통계로 설명하는 대신, 구조 현장의 실상을 직접 전한 방식이 독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분석이 나왔다.
‘물속에 가라앉은 지 오래된 사람’ — 계곡 구조 출동의 실상
백 씨는 계곡 구조 출동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그는 “이맘때 계곡 구조 출동을 자주 나가는데, 절반은 물속에 가라앉은 지 오래된 사람을 건져 올리는 출동”이라고 밝혔다. 구조대원들은 불어난 흙탕물 속으로 끊임없이 몸을 던진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탁류 속에서 생존 가능성을 확인하며 수색을 이어간다.
물가에서는 그 시간 내내 가족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떠오르지 않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계곡 전체에 퍼진다. 백 씨는 이 장면이 밤새 메아리친다고 전했다. 이것이 계곡 구조 현장의 통상적인 풍경이라는 것이다.
여름철 계곡 안전 사고는 기상 여건과도 직결된다. 광복절 연휴 기간 전국에 강수가 예보된 상황에서 계곡 수위는 예고 없이 급격히 오를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밤새 메아리치는 절규 — ‘공산국가’ 발언에 대한 반박
백 씨는 출입 통제를 두고 ‘공산국가’에 비유하는 반응에도 직접 입장을 냈다. 그는 “‘아빠, 아빠’, ‘여보, 여보’, ‘형, 형’이라는 절규를 한 번이라도 들어봤다면 물이 불어난 계곡의 출입 통제를 두고 자유를 빼앗겼다거나 공산국가라는 헛소리는 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반박은 규범적 주장보다 경험에 근거했다. 통제의 당위성을 논리로 설득하는 방식이 아니라, 구조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목격한 장면을 그대로 서술하는 방식이었다. 이 접근이 다양한 연령대와 정치 성향의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구급차 탄 지 1년, 유서를 쓰기 시작한 이유
백 씨가 구급차를 처음 탄 것은 10년 전이다. 1년쯤 지났을 무렵, ‘그 사람, 왜 죽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메웠다. 현장에는 너무 많은 삶과 죽음이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 싶어 했던 사람의 땀 냄새가 코끝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죽음에 대해 쓴 글이 위로가 됐다. 자신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나자, 주변 사람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구급차를 부르는 이들의 사정이 달리 들렸다. 가난과 불행이 유별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는 밝혔다.
이 변화는 현장에서의 태도로도 이어졌다. 백 씨는 죽으려는 이들에게 “일단 나가서 걸어보라”고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고통 앞에 선 사람에게 한 마디 말을 건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했다는 것이다.
에세이 ‘당신이 더 귀하다’ —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쓴 글
지난해 다산북스에서 출간된 ‘당신이 더 귀하다’는 구급대원으로서 마주한 삶과 죽음의 단상을 담은 에세이다. 백 씨는 브런치와 X(옛 트위터), 스레드 등에서도 꾸준히 글을 이어가고 있다.
책에는 구급차를 타며 마음속에 싹튼 감정을 묘사한 대목이 있다. “인내, 용기, 연민, 사랑. 어느 한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다만 그것은 세상의 가장 깊고 낮은 자리에 숨어 있었다.” 백 씨가 직접 쓴 문장이다.
10년간 그가 마주한 현장은 녹록지 않았다. 온몸에 토사물을 묻힌 주취자가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누군가의 깊은 슬픔을 받아내야 하는 순간도 반복됐다. 그럼에도 그는 이 일이 좋다고 밝혔다.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고, 외로운 이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글은 거울 — 필명 ‘백경’이 담은 뜻
백 씨의 필명 ‘백경’은 ‘맑은 거울’이라는 뜻이다. 매일 새벽 책상에 앉아 타자를 칠 때마다 ‘내가 이런 마음이었구나’를 깨닫는다고 했다.
글을 쓰는 행위가 자기 점검의 도구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쓴 글과 실제 자신 사이의 간극이 보일 때, 그는 행동을 돌아보고 실제로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백 씨가 글쓰기를 이어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14급 공무원’ — 낮은 자세의 철학
백 씨는 소방관을 스스로 ’14급 공무원’이라 표현한 바 있다. 공무원 직급 체계에 14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이 표현에 대해 “우리 조직이 낮은 자세로 국민 여러분을 대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떠올린 말”이라고 밝혔다. 직급의 가장 아래에, 사람들 곁에 가장 낮게 서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 표현은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백 씨가 부여하는 의미와 맞닿아 있다. 생사가 오가는 현장에서 가장 먼저 달려가는 역할이지만, 그 자세는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 에세이 전반에 흐르는 태도이기도 하다.
소방관이 직접 전한 여름철 안전 수칙
백 씨는 계곡 물놀이 안전에 대한 구체적인 당부를 남겼다. 핵심은 단순하다. 물이 불어나는 것을 인지하는 즉시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괜찮겠지’라며 머뭇거리는 동안에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수위가 오르고 사고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판단을 미루는 시간이 생사를 가를 수 있다는 경고다.
수영장 등 실내 시설에서의 어린이 익사 사고도 언급했다. “아이들이 귀찮아하더라도 반드시 구명조끼를 입히고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신경 써달라”는 당부였다. 계곡뿐 아니라 실내 수공간에서도 순간의 부주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 상황 | 권고 행동 | 이유 |
|---|---|---|
| 계곡 수위 상승 감지 | 즉시 자리 이탈 | 머뭇거리는 사이 수위가 급격히 오름 |
| 계곡 출입 통제 구역 | 통제 지시 준수 | 구조 출동 절반이 이미 가라앉은 사람 수색 |
| 어린이 수영장 입장 | 구명조끼 착용, 시야 유지 | 익사는 소음 없이 빠르게 진행됨 |
| 야외 물놀이 전반 | 기상 정보 사전 확인 | 갑작스러운 강수로 계곡 수위 급변 가능 |
백 씨의 발언과 에세이는 구조 현장 경험자가 직접 전하는 안전 당부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규정이나 통계가 아닌, 밤새 물가에 서서 이름을 부르던 가족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자의 말이기 때문이다.
출처: 서울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