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이 아니라 몸을 찍는 카메라 — 400년 전통 축제가 흔들리고 있다
· 무용수, 폭염에도 옷 겹쳐 입기…공연단 자체 의상 대책 마련
· 주최 측 올해부터 촬영 에티켓 공지, 경찰 상담도 검토
일본 도쿠시마현의 400년 전통 여름 축제 아와오도리(阿波おどり)가 8월 11일 개막한 가운데, 여성 무용수들의 신체를 집중 촬영한 영상이 SNS를 통해 잇따라 확산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요미우리신문과 TV아사히 등 일본 현지 매체들은 10일,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여성 무용수의 뒷모습이나 특정 신체 부위를 부각한 영상이 다수 게시된 사실을 보도했다. 매년 100만 명이 찾는 이 축제에서 공연단과 주최 측 모두 이례적으로 공식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연습 영상이 100만 뷰…댓글창은 춤 평가가 아니었다
피해 사례 가운데 하나로, 아와오도리 무용수인 32세 여성 A씨는 지난해 여름 자신이 연습 중인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 본인 동의 없이 틱톡에 게시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영상에는 연습복 위로 속옷 라인이 드러난 모습이 강조돼 있었고, 해당 영상은 100만 회 이상 재생됐다.
댓글 내용이 더 충격적이었다. 춤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었고, A씨의 외모와 몸매를 품평하는 댓글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A씨는 이에 대해 “슬프고 불쾌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후 그는 속옷이 비치지 않도록 어두운 색상의 연습복으로 바꾸고, 폭염 속에서도 옷을 여러 겹 겹쳐 입고 있다. “주의해야 할 것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는 A씨의 말은 이 문제가 단발성 사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호렌 공연단 “성적 관심 끌려는 영상이 해마다 늘고 있다”
약 150명의 무용수가 소속된 유명 공연단 ‘아호렌(阿呆連)’도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다치카와 마치 아호렌 단장은 “재생 횟수를 올리기 위해 일반적인 춤 영상과 달리 성적인 관심을 끌려는 영상이 증가하고 있다”며 “부적절한 영상을 촬영하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주의를 준 적도 있다”고 밝혔다.
요미우리신문이 문제 계정을 확인한 결과, 게시물 대부분이 아와오도리 영상이었고 촬영 대상도 여성 무용수에게 집중돼 있었다. 신문이 게시자에게 촬영 목적과 경위를 문의했지만 답변은 받지 못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는 해당 계정 외에도 여성 무용수의 신체 일부를 강조한 영상을 게시한 계정이 복수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아와오도리, 400년 전통의 일본 대표 여름 축제
아와오도리는 도쿠시마현을 대표하는 전통 군무(群舞) 축제다. ‘아와(阿波)’는 도쿠시마의 옛 지명이고, ‘오도리(おどり)’는 춤을 뜻한다. 400년 이상 이어진 이 행사는 매년 국내외에서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여름 문화 행사로, 2025년 공식 일정은 8월 11일부터 15일까지다.
전통 의상인 유카타를 입고 삿갓을 쓴 여성 무용수들의 군무가 이 축제의 핵심이다. 화려한 의상과 역동적인 동작이 최근 SNS 불법 촬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공연 문화를 향유하는 관객과 무용수 모두가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의 필요성이 새삼 부각되는 지점이다.
공연단이 먼저 움직였다 — 의상과 연습복 자체 대책
아호렌 공연단은 자체 대응책을 먼저 마련했다. 무용수들에게 체형이 드러나지 않는 넉넉한 연습복 착용을 권고하고, 본 공연에서 여성들이 입는 유카타도 바람에 벌어지지 않도록 핀으로 고정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 대응을 바라보는 시각은 복잡하다. 촬영 행위를 억제하는 대신 무용수 스스로 옷차림을 조정해야 하는 현실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아호렌 소속의 한 여성 무용수는 “이런 일이 계속되면 춤을 추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통 문화의 계승을 담당하는 주체들이 심리적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는 목소리다.
주최 측 대응 — 에티켓 공지에서 경찰 상담 검토까지
주최 측도 올해부터 공식 대응에 나섰다. 여러 공연단으로부터 피해 사례를 접수한 뒤, 공식 홈페이지 등을 통해 촬영 에티켓 준수를 당부하고 있다. 악질적인 사례에 대해서는 경찰에 상담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쇼노 고지 실행위원장은 “아와오도리를 자유롭게 즐겨주길 바라지만, 무용수들이 안심하고 안전하게 춤출 수 있는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최 측이 공식 에티켓 안내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간 자체적으로 감당해온 공연단들의 피해 사례가 축적된 결과다.
| 주체 | 대책 내용 | 적용 시기 |
|---|---|---|
| 아호렌 공연단 | 넉넉한 연습복 착용 권고, 유카타 핀 고정 | 최근 수년간 |
| 축제 주최 측 | 공식 홈페이지 촬영 에티켓 공지 | 2025년부터 |
| 주최 측 (검토 중) | 악질적 사례 경찰 상담 | 미정 |
| 일본 정부 | 비동의 촬영 처벌 법률 시행 | 2023년 |
법 적용의 장벽 — 성적 의도 입증이 관건
일본은 2023년 성적인 신체 부위나 속옷 차림 등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촬영하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을 시행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법 적용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범죄 피해자 지원 전문가인 가미타니 사쿠라 변호사는 “촬영 목적이 성적인 의도인지 통상적인 목적이었는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최 측이 주의를 철저히 알리고 악질적인 촬영을 제한해 성적 의도의 촬영이 이뤄지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사후 처벌보다 사전 환경 조성의 실효성이 더 높다는 분석이다.
조회수 경쟁 구조가 만든 문제 — SNS 플랫폼의 그림자
이번 논란의 구조적 배경에는 SNS 플랫폼의 조회수 경쟁이 있다. 다치카와 단장이 언급한 것처럼, 자극적인 영상이 조회수를 높이기 쉬운 플랫폼 알고리즘 환경 속에서 축제 현장이 콘텐츠 생산지로 활용되는 양상이다. 일반적인 공연 감상 목적의 촬영과 외관상 구분되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현장에서의 즉각적인 제지도 쉽지 않다.
100만 명의 관객이 스마트폰을 들고 찾는 축제에서, 촬영 에티켓의 문제는 단순한 예절의 차원을 넘어선다. 특정 유형의 영상이 소비되고 공유되는 플랫폼 구조가 무용수들의 참여 의지와 전통 문화 자체의 지속 가능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이 이 유형의 영상을 어떻게 분류하고 유통 범위를 제한할 것인지도 향후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행사 결과와 향후 대응에 관심이 쏠린다
아와오도리 2025년 행사는 8월 15일까지 이어진다. 올해 처음으로 주최 측이 공식 촬영 에티켓을 안내한 만큼 이 조치의 실제 효과에 관심이 모인다. 악질적 사례가 추가로 발생할 경우 경찰 상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
전문가들은 법적 처벌 규정, 주최 측의 환경 조성, 플랫폼 기업의 정책 등 복수의 축이 동시에 작동해야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수백 년 전통을 이어온 무용수들이 안심하고 무대에 설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질 수 있을지, 이번 논란이 그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출처: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