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강아지도 그래미보다 인기…유럽 언론이 BTS 편 든 이유
· 프랑스·영국·스페인 언론 ‘인종 범주 차별’ 비판 잇따라
· 르피가로 ‘한국이 미국 상 휩쓸까 두렵다’ 분석
그래미 ‘베스트 아시안 팝’ 신설, BTS는 보이콧으로 응답
미국 음악 시상식 그래미 어워즈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는 지난 6월 케이(K)팝·제이(J)팝·시(C)팝 등을 “집중 조명”한다는 취지로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상의 신설을 발표했다. 아시아 팝 시장의 가장 큰 존재감을 지닌 그룹 가운데 하나인 방탄소년단(BTS)은 이에 정면으로 반발했다. BTS는 음악이 지역과 언어로 구분되는 데 동의할 수 없다며 그래미 출품을 거부했다.
보이콧 선언은 BTS가 글로벌 활동의 정점에 있을 때 나왔다. 지난달 19일에는 미국 뉴욕 뉴저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 하프타임 쇼에 출연했다. 같은 달 17일에는 프랑스 생드니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에서 월드 투어 공연을 펼쳤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가 공연장을 찾아 응원봉을 손에 쥐고 관람하는 모습이 전광판에 포착돼 화제가 됐다.
르피가로 “아시아 음악이라는 허울…폄훼이자 인종차별”
BTS의 보이콧이 알려진 뒤 유럽 언론의 반응은 대체로 지지 쪽이었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는 현지시각 14일 “그래미, ‘아시아 팝’ 상 신설로 제 발등 찍다—폄훼이자 인종차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레코딩 아카데미의 결정을 비판했다.
르피가로가 인터뷰한 프랑스 문화부 소속 사회학자 실비 옥토브르는 그래미의 논리를 유럽 맥락에 대입해 문제를 드러냈다. “모두 유럽인이 만들었으니 프랑스 음악이 독일·스페인 음악과 똑같다고 주장하는 꼴”이라며 “음악적으로도, 언어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폄훼이며 인종차별”이라고 말했다. 케이팝·제이팝·시팝은 각각 독립된 문화 맥락을 갖고 있음에도 ‘아시아’라는 지리적 범주 하나로 묶인다는 지적이다.
옥토브르는 그래미가 내세우는 명분과 실제 행태 사이의 모순도 짚었다. “그래미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시상식이 되고 싶어 하면서도,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아시아 음악’이라는 미명으로 음악과 무관한 민족·인종 범주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스스로 제 발등을 찍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진짜 두려워하는 건 한국이 상을 전부 휩쓰는 상황”
르피가로는 아시아 음악상 신설의 이면을 미국 문화 권력의 방어 전략으로 읽었다. 신문은 “미국은 중국이 케이팝을 전면 금지했던 방식(한한령)과 달리, 그래미 같은 상징적인 제도를 활용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주최 쪽이 진짜 두려워하는 건 한국 아티스트들이 미국 아티스트들의 상을 전부 휩쓰는 상황”이라고 썼다.
“정국 강아지도 그래미보다 인기”…손해는 누구에게 돌아가나
르피가로는 전 미국사회학회 부회장 그레이스 카오도 인터뷰했다. 카오는 “BTS는 그럴 만한 여력이 있으니 불참을 결정한 것”이라며 “BTS는 그래미보다 훨씬 많은 소셜미디어 팔로워를 갖고 있다. 정국이 기르는 개도 그래미 시상식보다 인기가 많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는 BTS의 불참이 오히려 그래미에 손해가 된다는 논점이다. 세계적 팬덤을 보유한 아티스트가 시상식을 외면할 경우 해당 시상식의 글로벌 주목도와 시청 관심이 줄어들 수 있다는 구조다. 르피가로는 “비티에스가 시상식에 빠지면 그래미만 손해”라는 야유를 이 맥락에서 소개했다.
스페인 엘파이스, 라틴 음악 홀대와 연결해 비판
같은 구조적 문제를 스페인에서도 거론했다.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는 레코딩 아카데미가 아시아 음악상과 함께 내년 도입을 예고한 ‘최우수 라틴 노래’ 상을 함께 거론하며 비판했다. “출신 지역이나 언어를 기준으로 아티스트를 구분짓는 부차적인 부문이 추가되면, 이미 북미·영국 아티스트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요 부문에서는 비서구권 아티스트들이 더욱 멀어질 것”이라는 논리다.
엘파이스는 콜롬비아 가수 제이 발빈이 2021년 “그래미는 우리를 제대로 평가하지도 않으면서 우리를 필요로 한다”고 일침한 발언도 다시 인용했다. “지난 수년간 그래미에 불만을 표시한 아티스트는 한둘이 아니다. 엄청난 상업적 성공과 문화적 영향력을 일군 작품들이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BTS의 보이콧은 이 오랜 불만의 최근 표현으로 읽힌다.
영국 가디언 “아시아·라틴 팝은 ‘새로운 시장’이 아니다”
영국 가디언은 레코딩 아카데미가 “새 음악 장르들을 기릴 기회가 필요”해 새로운 부문을 만들었다고 한 데 정면으로 반박했다. “아시아와 라틴 팝 시장은 결코 ‘새로운’ 시장이 아니다. 두 시장 모두 수십 년간 성숙해왔고, 미국을 포함해 막대한 수익과 방대한 청중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BTS의 보이콧에 대해 “표현 자체는 부드러웠지만 새 부문을 겨냥한 매우 인상적인 질책”이라고 평가했다. 이탈리아 시사주간지 파노라마 역시 BTS의 결정이 “음악은 그 자체로 즐겨야 한다는 보편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봤다.
유럽 4개국 언론 비판 요지
| 매체 | 국가 | 주요 비판 요지 |
|---|---|---|
| 르피가로 | 프랑스 | 인종차별 규정, 아시아 소프트파워 견제 전략이라는 분석 |
| 엘파이스 | 스페인 | 라틴 음악과 같은 구조, 부차 부문 확대로 주류 배제 심화 |
| 가디언 | 영국 | ‘새로운 시장’ 명분 반박, 수십 년 역사의 성숙 시장임을 지적 |
| 파노라마 | 이탈리아 | BTS 결정을 음악 보편성 메시지로 평가 |
레코딩 아카데미 침묵 속 남은 쟁점
현재까지 레코딩 아카데미가 BTS의 보이콧이나 유럽 언론의 비판에 공식적으로 응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아카데미는 신설 발표 당시 ‘집중 조명’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것이 다양성 확대인지 사실상의 분리인지를 둘러싼 해석은 엇갈리고 있다.
그래미는 비영미권 음악에 대한 주요 부문 배제 비판을 수십 년째 받아왔다. 라틴 음악은 이미 별도 ‘라틴 그래미’로 분리된 선례가 있다. 이번 아시아 팝 부문 신설이 같은 경로를 따를 경우 주요 시상 범주는 더욱 협소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유럽 언론이 BTS의 보이콧을 지지하는 배경에는 공통된 경험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프랑스·스페인·영국·이탈리아는 미국 주도의 음악 시상 체계에서 비주류로 밀려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번 논쟁은 그래미 내부 문제를 넘어 세계 음악 시장에서의 문화 권력 재편이라는 더 큰 질문으로 번지고 있다.
출처: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