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이 날아다니자 러시아인들은 베개 밑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 드론 공격→통신 차단→결제 마비로 현금 수요 폭증
· 공산당 ‘국유화’ 발언이 예금 압류 공포 자극
2주 만에 4조 8100억원…스베르방크 금리 10%로도 막지 못했다
러시아 최대 은행 스베르방크는 올해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를 연 10%로 걸었다. 그러나 계좌 이탈은 멈추지 않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18일(현지시간) 러시아 중앙은행 자료를 인용해 이달 1일부터 14일까지 2주 동안 러시아 은행권에서 2864억루블(약 4조 8100억원)이 빠져나갔다고 보도했다.
인출 규모는 달을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6월 유출액은 45억달러(약 6조 3600억원), 7월은 73억달러(약 10조 3200억원)였다. 올해 들어 현금 순유출은 한 달도 끊기지 않았고, 누적 인출액은 2조 5000억루블(약 45조 2300억원)에 달한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년간 빠져나간 2조루블(약 34조 9100억원)을 단 7개월 만에 넘어선 수치다.
| 기간 | 인출 규모 | 한화 환산 |
|---|---|---|
| 2026년 6월 | 45억달러 | 약 6조 3600억원 |
| 2026년 7월 | 73억달러 | 약 10조 3200억원 |
| 2026년 8월 1~14일 | 2864억루블 | 약 4조 8100억원 |
| 올해 누적 | 2조 5000억루블 | 약 45조 2300억원 |
드론 공격이 통신 차단으로, 통신 차단이 결제 마비로
인출을 촉발한 직접적인 계기는 통신망 차단이었다. 우크라이나가 올해 러시아 주요 도시와 기반시설을 겨냥한 드론 공격을 늘리자, 러시아 당국은 드론의 통신과 항법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도시마다 이동통신망을 반복해 끊었다. 이동통신이 끊긴 지역에서는 카드 단말기도, 온라인 결제도 작동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현금을 미리 확보하려는 수요가 이 때문에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러시아 전직 재무부 고위 당국자는 WP에 “드론이 날아다니고 여기저기 불이 나기 시작하면서 불안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돈을 은행에 맡기면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불거지면서, 베개 바로 밑에 돈을 둬야 한다는 이전 지혜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전했다.
은행 밖을 도는 현금 343조원
러시아 은행권 밖에서 유통되는 현금은 1년 전보다 17% 넘게 늘어난 19조루블(약 343조 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연 10%대 이자를 포기하면서까지 현금을 손에 쥐려는 수요가 러시아 전역에서 얼마나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이는 단순히 일부 불안 심리에 따른 현상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제 인프라 자체가 전쟁 상황에서 신뢰할 수 없는 수단으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현금 보유가 합리적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공산당 대표 ‘민간 예금 동원’ 발언이 불씨를 댕겼다
통신 차단에 따른 결제 불안에 예금 압류 우려가 겹쳤다. 지난달 겐나디 주가노프 러시아 공산당 대표는 “전쟁 비용을 대려면 은행에 잠긴 민간 자금 수십조루블을 끌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 이후 예금이 동결되거나 강제 징발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코펜코 전 자문역은 국유화 실현 가능성 자체는 낮게 보면서도 “당국이 인출 한도에 제한을 거는 상황까지 배제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국채(OFZ) 경매 무기한 중단…은행들 살 현금도 남지 않았다
예금 이탈의 여파는 국채 시장으로 옮겨붙었다. 러시아 재무부는 지난달 20일 매주 열던 OFZ 경매를 기한 없이 중단했다. OFZ(연방채권)는 러시아 정부가 루블화로 발행해 재정 적자를 메우는 국채이며, 이를 가장 많이 사들인 주체가 러시아 시중은행들이었다. 전문가들은 현금 인출이 가속화되면서 상당수 은행이 국채를 살 여력조차 잃었다고 분석했다.
크레이그 케네디 하버드대 데이비스 러시아·유라시아연구센터 연구원은 WP에 “전쟁 한복판에서 국채 발행에 거듭 실패하는 강대국은 없다”며 “OFZ 발행 무기한 중단은 러시아가 무리했다는 불길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재정적자 연간 목표 이미 초과…상반기 GDP 성장률 0.3%
러시아의 전반적 재정 상황도 악화 일로다. 1~7월 연방 재정적자는 6조 4600억루블(약 107조 5700억원)로 올해 연간 목표치인 3조 8000억루블을 벌써 초과했다. 상반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3%에 그쳤다. 전쟁 장기화에 따른 군비 지출 급증과 대서방 제재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OFZ 경매 중단은 이 같은 재정 압박과 직결된다. 러시아 정부가 국채를 통해 재정 구멍을 메우는 구조가 흔들리면서, 전쟁 비용 조달 방식 전반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스베르방크 CFO “올해 인출, 침공 첫해의 2배 수준 될 것”
타라스 스크보르초프 스베르방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러시아 라디오 방송 RBK 인터뷰에서 “올해 인출액이 침공 첫해의 2배 수준으로 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매달 큰 규모로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며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상황이 나아질 수 없다”고 말했다.
스베르방크는 러시아 금융 시스템의 중추에 해당하는 최대 은행이다. 그 CFO가 공개 인터뷰에서 전망을 이처럼 부정적으로 밝힌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연 10% 금리로도 대규모 이탈을 막지 못하는 상황에서 러시아 은행권이 신뢰 회복의 돌파구를 어떻게 찾을지는 현재로선 불분명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출처: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