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백악관·내각 연쇄 면담의 속내
월스트리트저널이 7월 24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고위 임원들이 최근 몇 주 사이 트럼프 대통령,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을 잇따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애플 측이 꺼낸 요청은 단순했다. 미국 외 지역에서 판매하는 애플 제품에 중국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TC)의 메모리 반도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것이었다.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이 수출 통제 대상인 중국산 부품 사용 승인을 행정부에 직접 타진한 셈이다.
D램 6개월 만에 두 배…조달 위기의 배경
애플이 내세운 명분은 부품 조달 비용 급등이다. 메모리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하면서 원가 관리에 차질이 생겼고, 이대로면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범용 D램 가격은 1분기 대비 58~63%, 낸드는 55~60% 급등했다. 범용 DDR4의 평균 고정 거래가격은 1월 11.50달러에서 6월 21달러로, 6개월 만에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이 같은 가격 급등의 진원지는 AI 데이터센터 수요다. 빅테크 하이퍼스케일러들이 AI 인프라 구축에 대규모 물량을 쏟아붓기 시작하면서 공급 여력이 빠르게 줄었다.
갑의 자리를 잃은 애플, 왜
과거 애플은 세계 최대 메모리 구매자였다. 막대한 발주 물량을 앞세워 공급가를 최저 수준까지 끌어내렸고, 메모리 기업들은 공장 가동률을 유지하기 위해 애플의 단가 인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AI 데이터센터 기업들이 더 큰 구매자로 부상하면서 이 공식이 무너졌다.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시장에서 공급사가 굳이 단가를 깎는 고객을 우선시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애플이 메모리 부품사들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자업자득”…업계가 동정하지 않는 이유
시장 반응은 동정보다 냉소에 가깝다. 수십 년간 납품 단가를 후려쳐온 애플이 이제 와서 공급 부족을 호소한다는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메모리 납품업체들을 압박해 가격 후려치기를 일삼았던 애플의 자업자득”이라는 반응이 나온다고 보도됐다. 메모리 기업들이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AI 서버 고객 물량을 먼저 소화하는 것은 시장 논리상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시각이다.
마이크론의 맞불: 2,500억 달러 투자 카드
미국 유일의 대형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은 애플의 요청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마이크론은 중국산 저가 메모리가 허용될 경우 미국 철강 산업이 중국산 저가 제품에 밀려 쇠퇴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나아가 향후 10년간 미국에 2,500억 달러(약 365조 원)를 투자해 생산 능력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소비자 물가 안정과 자국 반도체 산업 보호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구도가 됐다.
삼성·SK하이닉스의 역설: 실적은 최대, 주가는 역대 최저 수준
애플이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메모리 시장의 실질적 수혜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그런데 두 기업의 주가는 실적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4.42배, SK하이닉스는 4.73배에 그친다. 두 기업 모두 올해 장중 고점 대비 각각 34.8%, 40.9% 하락했으며, 코스피 전체 선행 PER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저점보다도 낮은 역사적 최저 수준까지 밀렸다. 비교 기준으로 마이크론의 선행 PER은 두 자릿수대로, 한국 두 기업의 두 배 이상이다.
저평가인가, 밸류 트랩인가
낮은 밸류에이션의 원인으로는 두 가지가 지목된다. 첫째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AI 인프라 투자가 지속될 수 있겠느냐는 ‘반도체 고점 불안감’이다. 지금 이익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더라도 이 사이클이 꺾일 경우를 우려하는 시각이 주가를 누른다는 분석이다. 둘째는 메모리가 대표적인 경기 민감 사이클 산업이라는 점에서 오는 이익 지속성 불신이다. 업계에서는 ‘밸류 트랩(value trap)’ 경계도 나온다. 사이클 산업은 호황 정점에서 이익이 최대치를 기록하고 PER이 가장 낮아 보이는데, 역사적으로 그 시점이 주가 고점인 경우가 많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메모리주는 PER이 낮을 때 팔고, 불황 바닥에서 PER이 높을 때 사라”는 역발상 원칙이 회자되고 있다고 보도됐다.
출처: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