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만에 돌아온 공원, 다시 개발 도마 위에
· 용산구 ‘역사·상징 공간, 주택 부지로 볼 수 없다’ 반발
· 서울시도 즉각 반대…지자체 저항 구도 형성
장관 발언 하루 만에 지자체 반발 연쇄 점화
국토교통부 김윤덕 장관이 8월 14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용산공원 전체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히자, 하루 만에 지방자치단체의 공개 반발이 잇따랐다. 서울시가 같은 날 기자회견 직후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15일에는 용산구가 공식 입장문을 발표하며 “강력히 반대한다”고 천명했다.
이번 발언의 파장이 컸던 이유는 검토 범위의 확대에 있다. 그간 일부 논의는 용산공원 내 용산어린이정원 일대에 한정됐다. 그런데 장관이 ‘어린이정원을 넘어 공원 전체’를 주택 공급 후보지로 거론함으로써 논쟁의 범위가 대폭 확대됐다. 용산어린이정원은 미군 기지 반환 이후 시민에게 먼저 개방된 구역으로, 이를 넘어 공원 전체를 검토하겠다는 발언은 용산공원 조성 계획의 방향 자체를 재검토하겠다는 신호로 읽혔다.
용산구 입장문 — “깊은 유감, 강력 반대”
용산구는 15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국토부 장관이 용산공원 내 어린이정원을 넘어 용산공원 전체를 주택 공급 후보지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깊은 유감을 표하며, 이런 추진 방향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구의 관할 구역 내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용산공원 문제에서 정부 방침에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입장문은 단순한 이의 제기를 넘어 용산공원의 역사적 위상을 재환기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다. “용산공원은 120년 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서울 도심의 마지막 대규모 국가 정원”이라는 문구가 핵심 논거로 제시됐다. 여기서 ‘120년’은 일제강점기부터 미군 기지 사용 기간까지, 용산 부지가 일반 시민의 접근이 제한된 채로 유지된 시간을 함축한다. 용산구는 이 역사적 무게를 전면에 내세워 공원 부지를 개발 자원으로 접근하는 시각 자체에 이의를 제기했다.
프레이밍 자체를 거부한 논리
용산구의 입장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반대 논거의 방식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미래를 담아낼 국가의 상징 공간이 될 용산공원을 ‘주택 공급에 활용할 수 있는 땅이 있는가’라는 관점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이는 특정 개발 방식이나 물량을 조정하자는 수준이 아니라, 용산공원을 개발 가용 자원으로 설정하는 검토 프레임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용산공원을 ‘국가 상징 공간’으로 규정함으로써, 이 공간에 대한 어떤 형태의 주거 용도 전환 검토도 원칙적으로 부적절하다는 논거를 구성한 것이다.
서울시 — “기후 위기 시대 국가 자산”
용산구보다 한 발 앞서 움직인 것은 서울시였다. 14일 김 장관의 기자회견 직후 서울시는 “용산공원은 단순한 유휴 부지가 아니라 기후 위기 시대에 시민의 삶을 지키고 미래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줘야 할 소중한 국가 자산”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의 반대 논거는 용산구와 방향을 공유하면서도 강조점이 달랐다. ‘기후 위기’를 전면에 내세운 점이 특징이다. 도심 대규모 녹지는 열섬 현상 완화와 탄소 흡수원으로서 기능한다는 점에서, 서울시는 단순한 지역 이해관계 충돌이 아니라 기후 정책과 미래 세대 권리의 문제로 프레임을 설정했다. ‘단순한 유휴 부지’가 아니라는 표현은 정부의 검토 접근 방식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이기도 하다.
각 주체 입장 비교
| 주체 | 입장 | 핵심 논거 |
|---|---|---|
| 국토부 (김윤덕 장관) | 검토 중 |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 필요, 용산공원 전체 고민 |
| 서울시 | 반대 | 기후 위기 시대 국가 자산, 미래 세대 유산 |
| 용산구 | 강력 반대 | 120년 만의 마지막 국가 정원, 역사·상징 공간 |
정부가 용산공원을 꺼낸 배경
정부가 용산공원을 주택 공급 후보지로 거론한 배경에는 서울 도심 내 신규 공급 가용 부지의 구조적 부족 문제가 있다. 기존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규제와 복잡한 이해관계로 속도를 내기 어렵고, 그린벨트 해제나 외곽 신도시 개발은 도심 수요를 충족하기에 시간이 걸린다.
월 100만 원씩 5년을 적금해도 집값 상승분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현실은 주거 문제를 정치적 핵심 의제로 만들어 온 구조적 압력이다. 도심 접근성이 뛰어나고 면적이 넓은 용산공원 부지가 공급 측면에서 매력적인 카드로 평가됐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군 기지 반환 이후 오랜 논의를 거쳐 국가 공원으로 조성 방향이 설정된 부지를 선회하려면, 법령 개정과 여론 설득이라는 두 겹의 벽을 넘어야 한다.
용산구의 대안 — 재건축·재개발 우선
용산구는 반대만 표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안을 명시했다. 입장문은 “주택 공급이 필요하다면 기존 도심의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하고 정비 사업을 통한 신규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등 도시의 기능과 공공성을 함께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먼저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논리는 공급 확대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의 우선순위를 문제 삼는 구조다. 기존 도심 정비 사업은 이미 조성된 인프라와 생활권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시 계획적으로도 통상 선호되는 접근 방식이다. 다만 재건축·재개발 물량과 속도가 실제 정부의 공급 목표를 충족할 수 있는지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한 영역이다.
쟁점 — 결정 권한과 정치적 압박
이번 논란의 구조적 쟁점은 결정 권한의 소재다. 용산공원은 국가 소유 부지로, 국토부가 관련 법령에 따라 조성 계획을 수립하는 주체다. 서울시와 용산구는 지역 행정 주체로서 의견을 표명할 수 있지만, 국가의 부지 활용 결정을 법적으로 직접 저지할 수단은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두 지자체의 공개 반대는 법적 구속력보다 정치적 압박의 성격이 강하다. 잇따른 입장 표명은 여론을 조성해 정부 계획의 추진 비용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국토부는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로, 장관의 발언은 ‘검토 중’이라는 의사를 확인한 수준이었다.
향후 전망
현 단계에서 정부가 용산공원 활용 계획을 어떻게 구체화할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서울시와 용산구의 공개 반발로 정치적 부담이 높아진 만큼, 계획 수정이나 속도 조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용산공원은 역사적 상징성과 함께 시민적 관심이 집중된 공간이다. 어떤 방향으로 결정이 나더라도 사회적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두 지자체의 잇따른 공개 반대 표명은 주택 공급 정책과 도시 공공 자산 보전이라는 두 과제 사이의 갈등을 공론장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향후 관련 정책 논의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