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설 거장의 후손이 광복절에 직접 털어놓은 것
· 하영 증조부 논란으로 친일 후손 문제 다시 수면 위로
· 반민특위 실패가 지금도 집단 분노로 이어진다는 분석
광복절을 앞두고 친일파 이인직 후손 고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밴드 ‘양반들’의 보컬이자 작가인 전범선이 자신의 외가 5대조 할아버지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인직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처음 고백은 지난 4월이었으나, 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 논란이 불거지면서 14일 전씨의 목소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인직 — 교과서 속 작가와 친일인명사전 사이
이인직은 국어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이름이다. 1906년 발표된 <혈의 누>로 한국 최초의 신소설 작가로 기록돼 있다. 전범선 스스로 “최초의 신소설 작가로만 알고 있었다”고 했을 만큼, 문학적 지위는 뚜렷하다.
그러나 그 이면의 기록은 다르다. 이인직은 대한제국 멸망을 주도한 이완용의 비서로 활동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반민족행위자다. 문학적 업적과 반민족 행적이 한 인물 안에 공존한다. 전범선은 그 인물의 피를 잇고 있다.
어머니의 조심스러운 고백 — 가족이 수십 년간 숨겨온 것
전범선은 14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가족사를 알게 된 경위를 밝혔다. “어느 날 어머니가 제 방에 들어오셔서 오랫동안 알려주시지 않은 비밀을 조심스레 말씀하시더라”고 그는 전했다. 어머니에게도 고조할아버지에 해당하는 이인직이 5대조라는 사실이었다.
어머니의 반응이 가족이 이 사실을 어떻게 안고 살아왔는지를 압축한다. “어디 가서 이인직 후손이라고 말도 못 하는 등 부끄러움이 크셨다더라”는 것이다. 자랑스럽지 못한 뿌리를 조용히 묻어두는 것. 그것이 이 집안이 택한 방식이었다.
독립운동가를 연구하다 마주친 역설 — 호머 헐버트와의 인연
전범선이 이 고백을 들은 시점이 예사롭지 않다. 미국 다트머스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던 중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1863~1949)를 연구하던 때였다.
헐버트는 미국인임에도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순한글 최초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집필했고,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시해 직후 고종 황제의 요청으로 불침번을 섰다. 고종에게 <대한제국 멸망사>를 헌정하기도 했으며, 헤이그 특사 3인보다 먼저 헤이그에 도착해 있었다. 다트머스대 선배이기도 한 이 미국인에게 감동받은 전범선은 방학마다 한국으로 돌아와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에서 인턴으로 활동하며 청년회장으로서 홍보 업무까지 맡았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이방인을 기리던 청년이, 바로 그 조선을 무너뜨리는 데 가담한 인물의 후손이었다. 역사는 이런 식으로 한 사람 안에서 충돌한다.
하영 증조부 논란이 다시 불씨를 당겼다
전범선의 고백이 재조명된 직접적인 계기는 배우 하영의 가족사 논란이었다.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1872~1927)를 둘러싼 친일 행적 의혹이 제기되면서 친일 후손 문제가 다시 공론화됐다.
단, 안상호는 현재 정부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이나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어디에도 등재돼 있지 않다. 이 점은 이인직의 경우와 구별된다. 하영은 논란을 계기로 “증조부 안상호의 과거 행적을 접하며 가족의 역사를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보게 됐다”고 사과했다.
두 사람의 사례는 성격이 다르지만, 친일 역사를 둘러싼 사회적 감수성이 얼마나 예민하게 작동하는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올해 광복절 연휴를 전후로 이 논쟁이 다시 타오른 것은 상징적이다.
트라우마와 분열적 역사관 — 《한국사 테라피》를 쓴 이유
전범선은 최근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를 출간했다. 집필 동기를 그는 직접 이렇게 설명했다. “(이인직의 친일 이력은) 제게 일종의 트라우마이기도 하다. 트라우마로 인한 분열적인 역사관 때문에 가리고 숨겨 놨던 것들을 수면 위로, 공과를 다 돌이켜보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
용서보다 이해가 먼저라는 태도다. “굉장히 복잡한 심경과 함께, 용서는 둘째 치고 일단 (할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었다”고 그는 밝혔다. 단죄보다 이해를 앞세우는 이 접근은, 친일 역사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입장이기도 하다.
반민특위 실패가 남긴 것 — 4대가 지나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 이유
전범선은 지금의 사회적 반응에서 더 깊은 구조적 문제를 짚었다.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따지는 걸 떠나서 지금 4대·5대가 지났는데도 이렇게까지 전국민적인 화와 아픔이 느껴지는 건 아직도 우리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는 1948년 출범했으나, 이승만 정권의 방해와 친일 세력의 역공으로 1949년 사실상 해체됐다. 역사적 청산의 공식 기회가 좌절된 이 실패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집단적 분노의 저수지로 남아 있다는 것이 전씨의 시각이다.
“부끄러움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최선”
전범선이 이번 고백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하나로 모인다. “모든 역사적 인물에겐 공과가 있다. 그런데 거기에 어떤 딱지를 붙이거나, 부끄러움 때문에 덮어두고 기억을 안 한다면 그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일제의 참혹한 기억에 얽매여 있지 말고 우리 안의 부끄러움과 시시비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최선”이라는 그의 말은, 친일파 후손이라는 개인의 고백을 넘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으로 읽힌다.
이인직을 ‘최초의 신소설 작가’로만 알고 있었다는 첫 고백은, 우리가 역사를 얼마나 선택적으로 기억해왔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광복 81주년, 아직 끝나지 않은 청산의 문제는 뮤지션 한 사람의 가족사를 통해 다시 한번 그 윤곽을 드러냈다.
출처: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