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폭염 초과사망 1만 명이 드러낸 불평등 재난

태풍은 집을 무너뜨리고, 폭염은 사람을 고른다

· 6월 마지막 주 유럽 초과사망 1만 명 돌파, 65세 이상 다수
· 기온보다 빈곤·고립·복지 공백이 폭염 사망률을 결정
· 이웃 연결망이 냉방 못지않게 생명을 구한다는 연구 결과

6월의 유럽, 초과사망 1만 명을 넘기다

지난 6월 말 유럽을 강타한 폭염은 냉혹한 숫자를 남겼다. 프랑스에서는 수천 곳의 학교가 문을 닫았고, 여러 도시의 기온이 섭씨 40도를 넘어섰다. 서유럽 6월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3도 이상 높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뜨거운 6월로 기록됐다. 더위가 한풀 꺾인 뒤에는 더 무거운 숫자가 드러났다. 6월 마지막 주 유럽의 초과사망자는 1만 명을 훌쩍 넘었으며, 희생자 상당수는 65세 이상 노인이었다.

초과사망이란 특정 기간의 실제 사망자 수가 과거 같은 기간 평균보다 얼마나 더 많은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재난의 실제 규모를 측정할 때 활용된다. 이 기준으로 보면 올여름 유럽 폭염은 명백한 재난이었다. 그러나 기록이 집계되기 전까지 그것은 재난처럼 보이지 않았다.

폭염이 재난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

태풍은 지붕을 날리고, 홍수는 자동차를 떠내려보낸다. 폭염은 다르다. 무더운 방과 병실, 요양원에서 사람들은 소리 없이 쓰러진다. 재난이 닥쳤음을 알려주는 가시적인 파괴가 없다. 이것이 폭염이 재난이면서도 재난처럼 보이지 않는 구조적 이유다.

제프 구델은 저서 폭염 살인(웅진지식하우스)에서 인체 생리부터 들여다본다. 인간은 체온을 37도 안팎으로 유지해야 하는 동물이다. 날씨가 더워지면 피부 가까이로 피를 보내고 땀을 흘려 열을 배출한다. 그러나 습도가 높아 땀이 증발하지 않으면 이 냉각 체계는 작동을 멈춘다. 체온이 계속 오르면 심장, 신장, 뇌가 차례로 손상된다.

폭염은 사람을 단번에 쓰러뜨리기도 하지만 대개 기저질환을 악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망진단서에는 심근경색이나 신부전 같은 다른 진단명이 기재된다. 더위가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살인범으로 불리는 이유다. 공식 통계에서 폭염 사망이 과소집계될 가능성도 이 메커니즘에서 비롯된다. 구델은 파키스탄의 뜨거운 도시에서 시카고와 파리, 녹아가는 남극까지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이 구조를 추적한다. 열은 사람만 공격하지 않는다. 전력망을 흔들고, 농작물을 말리고, 바다를 데우며, 산불과 감염병의 위험을 키운다.

“폭염은 사회극이다” — 시카고 1995년의 기록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에서 일주일 새 700명이 넘는 초과사망자가 발생했다.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저서 폭염 사회(글항아리)에서 그 죽음의 지도를 들여다봤다. 어느 동네에서 누가 죽었고, 바로 옆 동네에서는 왜 더 많은 사람이 살아남았는지를 추적한 연구다.

사망률을 높인 것은 기온만이 아니었다. 빈곤과 고립, 범죄에 대한 공포, 쇠퇴한 상점과 공공시설, 복지 행정의 실패가 피해를 키웠다. 클라이넨버그는 “폭염은 일종의 사회극”이라고 규정했다. 평소에는 무대 뒤에 가려져 있던 사회의 구조가 재난이 닥치자 한꺼번에 드러난다는 의미다.

혼자 사는 노인은 범죄가 두려워 창문조차 열지 못했고, 집을 나와 더위를 피할 장소도 없었다. 반면 형편이 비슷해도 거리에 사람들이 오가고 상점과 교회가 살아 있으며 이웃이 서로 안부를 묻는 동네에서는 사망률이 낮았다. 폭염은 자연현상이지만, 폭염 사망은 사회적 사건이라는 것이 이 연구의 핵심 결론이다.

한국의 폭염: 같은 재난 문자, 다른 조건

폭염특보가 내려지면 모두에게 같은 재난 문자가 전송된다. 그러나 문자만으로 집 안의 온도를 낮출 수는 없다. 한국의 폭염 위험은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

배달 노동자는 달궈진 도로 위에 있고, 농민은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며, 건설 노동자는 그늘 없는 현장을 지킨다. 옥탑방은 아파트 거실보다 뜨겁다. 노인은 에어컨 버튼을 누르기 전에 전기 요금을 먼저 계산한다. 더위는 모두에게 오지만,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능력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박지성의 저서 1도의 가격(윌북)은 이 불평등에 숫자를 붙이는 작업이다. 기온이 오르면 농작물 수확량과 노동생산성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 성과와 사람들의 판단력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분석이 담겨 있다. 기후 변화가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을 어떻게 심화시키는지를 수치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조건 사망 위험을 높이는 쪽 사망 위험을 낮추는 쪽
주거 환경 옥탑방·고시원·단열 불량 주택 냉방 가능한 일반 주거
사회적 연결 독거·고립 상태 활발한 이웃 관계·공동체
공공시설 접근 상점·복지관 부재 지역 접근 가능한 공공 냉방 공간
소득 수준 전기 요금 부담으로 에어컨 자제 에어컨 상시 가동 여유
직업 유형 야외 노동(배달·농업·건설) 실내 근무
폭염 사망은 기온 수치가 아니라 사회적 조건이 결정한다. 1995년 시카고에서 같은 기온 아래 어떤 동네는 살아남고 어떤 동네는 죽음을 맞은 이유는 공동체 연결망의 밀도에 있었다.

에어컨의 역설: 개인을 식히고 도시를 달군다

구델은 에어컨의 이면도 지적한다. 에어컨은 열을 없애는 기계가 아니다. 실내의 열을 바깥으로 밀어낼 뿐이다. 구델은 “오늘날 우리가 삶에서 만들어내는 열은 어딘가에 가둘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열은 세상 모든 것에 가닿는다”고 썼다. 누군가의 방을 식힌 열이 거리로 밀려나 도시 전체의 기온을 높인다.

어떤 이는 에어컨이 켜진 집과 자동차와 사무실 사이를 오가며 더위를 피한다. 그러나 이 냉방 경로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위는 피할 수 없는 환경이다. 에어컨 보급 확대가 도심 열섬 현상을 심화시키는 구조는 폭염 대책을 개인 냉방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돌봄이 해법으로 거론되는 이유

폭염 관련 연구자들이 공통으로 제시하는 방향은 ‘기후 돌봄’이다. 클라이넨버그의 시카고 연구에서 사망률이 낮은 동네의 공통점은 이웃 간의 연결이었다. 상점과 교회가 살아 있고, 거리에 사람들이 오가며, 누군가 이웃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동네. 이것이 물리적 냉방보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한 조건이었다는 것이 연구의 함의다.

냉방 시설 확충과 함께 고립된 노인과 취약계층을 연결하는 사회적 네트워크, 폭염 대피소의 실질적 접근성 확보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난 문자가 발송된 이후 누가 실제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가 폭염 대책의 실질적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돌봄 역량을 키우는 것이 진정한 폭염 대책이라는 주장이 이 맥락에서 나온다.

기록은 계속 갱신된다

올여름 유럽의 1만 명 이상 초과사망은 기후 변화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재난의 형태를 가리킨다. 가시적이지 않고, 조용하며, 사회의 약한 고리를 먼저 무너뜨리는 방식이다. 서유럽 6월 평균 기온은 평년 대비 3도 이상 높아 관측 이래 최고 기록을 세웠다. 기상 기록은 해마다 새로 쓰이고 있다.

더위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더위가 누구를 죽이는지는 사회가 결정한다. 클라이넨버그의 표현을 빌리면, 폭염의 반대말은 냉방이 아니라 돌봄이다.

출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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