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비만치료제인데 나라마다 가격이 최대 6배 다르다
· 챗GPT 고, 미국보다 한국이 31% 비싸
· “비싸도 잘 팔려” 제조사 인하 유인 없는 구조
편의점 아이스크림에서 시작된 ‘글로벌 호갱’ 논란
국내 편의점에서 1만6900원에 팔리는 수입 아이스크림이 해외 온라인몰에서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팔린다는 사실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회사원 김모(31)씨는 “배송비를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비싼 것 같다”며 “한국 소비자를 봉으로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가격 격차는 특정 품목에 국한된 사례가 아니다. 비만치료제, 생성형 인공지능(AI) 구독 서비스, 초콜릿, 위스키에 이르기까지 해외 브랜드 제품이 한국에서만 높은 가격에 팔리는 구조가 광범위하게 확인되고 있다.
위고비·마운자로, 중국서 절반 이하로…한국은 제자리
비만치료제 시장을 양분해온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는 지난해 말부터 중국에서 경쟁적으로 가격을 낮추고 있다.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는 저용량 한 달치가 약 26만6000원(1264위안)에서 4만9000원으로 대폭 인하됐다. 고용량 제품도 51만8000원에서 27만원 수준으로 내렸다.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 역시 중국에서 저용량 11만7000원, 고용량 33만6000원에 공급되고 있다.
한국의 흐름은 다르다. 위고비 저용량은 22만~30만원, 고용량은 40만~60만원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마운자로는 저용량 29만~35만원, 고용량 54만~60만원이다. 저용량 기준으로 위고비 한국 최저가(22만원)는 중국 현재 가격(4만9000원)의 4배를 넘는다. 중국에서 두 회사 간 가격 경쟁이 본격화된 이후에도 한국 가격은 변동이 없는 상태다.
| 제품 | 한국 가격 | 해외 가격(국가) |
|---|---|---|
| 위고비 저용량(월) | 22만~30만원 | 4만9000원 (중국) |
| 위고비 고용량(월) | 40만~60만원 | 27만원 (중국) |
| 마운자로 저용량(월) | 29만~35만원 | 11만7000원 (중국) |
| 마운자로 고용량(월) | 54만~60만원 | 33만6000원 (중국) |
| 챗GPT 고(Go) 구독(월) | 1만5000원 | 약 1만1460원 (미국) |
| 고디바 초콜릿(개당) | 4130원 | 3033원 (미국) |
챗GPT·고디바·위스키로 번진 가격 격차
오픈AI가 내놓은 저가 요금제 ‘챗GPT 고(Go)’도 국가별 가격 차이가 두드러지는 품목으로 꼽힌다. 한국의 월 이용료는 1만5000원으로, 미국의 8달러(약 1만1460원)보다 약 31% 비싸다. 고환율 상황이 일부 배경이 될 수 있지만 이를 감안해도 격차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비재에서는 더 다양한 품목의 가격 격차가 확인된다.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의 경우 한국에서 15조각짜리 ‘하트 오브 골드’가 6만2000원(개당 4130원)에 팔린다. 미국에서는 30조각 구성의 어쏘티드 초콜릿 골드 기프트 박스가 65달러(약 9만1000원·개당 3033원)에 판매돼, 개당 기준으로 한국이 약 36% 비싸다. 위스키 시장에서는 격차가 더 크다. 발베니, 발렌타인 등 인기 제품은 국내 가격이 영국·일본 등 주요 시장과 비교해 최대 2배 안팎에 달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기 제품은 가격 올려도 잘 팔린다” — 업계 입장
국내 판매 가격이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는 배경으로 업계는 수요 측면의 구조적 요인을 든다. 가격이 오르더라도 이를 감당하는 소비층이 존재하기 때문에 제조사나 해외 본사가 가격을 낮출 유인이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수입사 관계자는 “사람들은 유통 마진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수입사는 국내 소비자 반발을 우려해 가격 인상을 억제하고 있지만, 본사에서 가격을 올리고 있다. 인기 제품은 가격을 올려도 잘 팔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가 간 단순 가격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류·통관 비용도 있고, 광고 모델료 등이 가격에 반영되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업계 논리가 소비자의 체감 불만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반응도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학 교수 “정보 비대칭·브랜드 심리가 가격 격차 유지시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격 격차가 구조적으로 유지되는 원인으로 소비자 행동 측면의 두 가지 요인을 분석했다. 첫째는 정보 비대칭이다. 이 교수는 “소비자들은 우선 해외 가격 차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며 “설령 이를 알더라도 해외 직구는 절차도 복잡하고 배송까지 시간도 걸려 비싼 가격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둘째는 브랜드에 대한 소비 심리다. 이 교수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인식이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대체 제품이 있더라도 가격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하기보다 익숙하고 검증된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한국 소비자에게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소비 심리가 기업의 고가 전략과 맞물려 가격 격차를 고착화시키는 구조를 만든다는 분석이다. 국내 저가 커피 브랜드들마저 잇따라 가격을 올리는 상황이어서 전반적인 소비자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식음료·주류에서 AI·의약품으로…가격 차별화 분야 확대
업계에서는 글로벌 기업의 국가별 차등 가격 전략이 고부가가치 분야로 확산되는 흐름을 주목한다. 식음료·주류 등 전통 소비재에서 주로 관찰되던 현상이 챗GPT 같은 AI 구독 서비스와 위고비·마운자로 같은 고가 의약품으로까지 번진 양상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이 같은 가격 구조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품목별 문제를 넘어 구조적 쟁점으로 다뤄야 한다는 시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 구조가 고착화될 경우 소비자가 개별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해외 직구 활성화와 함께 소비자 단체 차원의 가격 정보 공개나 정부의 모니터링 확대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은희 교수는 소비자들이 ‘호갱’이 되지 않으려면 적극적인 정보 수집과 구매 행동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기업의 가격 결정 자율성이 존중되는 시장 환경에서 실질적인 제도적 해법을 마련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출처: 머니투데이